1. 개요
명작 소설의 기준은 '그 소설을 읽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 그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충분히 명작이라고 나에게 확신적인 말투로 항상 말씀하셨고, 책을 다 읽은 나도 그 분들의 생각에 동의할만큼 이 작품은 여러 시사점을 독자에게 던져준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생각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는 과정에서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한 적도 많고 가끔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던 적도 많았다.
문화권 자체가 달라 중간중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사촌끼리의 결혼이라던가... 신부측의 집안이 신랑측의 집안에 매달 돈을 보내는 현상이라던가... 사귀지 않고 결혼을 한다던가...) 비슷한 시대상을 다룬 넷플릭스의 '브리저튼'이라는 작품을 본 기억을 살려 최대한 이해해보려 노력하였다.
연애관과 결혼관에 확고한 생각을 가지기에 아직 경험이 충분하지 않지만 나름 스스로의 기준을 잘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난 아직도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그 감정을 묘사하는 많은 대목들 중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조금씩은 남아있다. 물론 이 책의 연애관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건강한 연애관이라는 확신이 스스로에게 있으며 이런 연애관에 동의를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
2. 본문 (스포일러 포함)
엘리자베스는 편견을 가지고 다아시가 오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서히 시간을 가지고 진실을 알아가면서 그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 이 책에 아주 자세하게 적혀있다.
당신은 저를 불쾌하게 만들고 모욕을 주겠다는 아주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으면서, 왜 당신의 의지를 거스르고, 이성을 거스르고, 심지어 인격까지 거스르면서 제게 좋아한다고 고백하시기로 결심하셨나요?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넘쳐나게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백을 받고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토해낸다.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위컴의 일방적인 이야기에 다아시에 대한 부정적인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받은 다아시의 고백은 최악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처음 서로를 보았을 때 한 사람은 내게 호감을 보인다며 좋아했고 다른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한다며 불쾌하게 여겼지. 그 바람에 난 그 두 사람이 관련된 일에서 선입견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없애버렸던 거야. 이 순간까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괴로움과 함께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데 이 부분의 흐름은 지금까지도 기억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결국 편견은 허영심에서 일어난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편견을 피하려면 스스로를 잘 알고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생생한 감정 표현을 통해 배웠다.
처음 책을 전부 읽었을 때는 순전하게 엘리자베스의 과실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4일정도 이 책에 대해 생각해보니 결국 엘리자베스가 편견을 가지게 한 원인의 다아시의 오만한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직접적인 말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무례했다. 이 책에 따르면 오만은 자신의 대한 생각에서 온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내가 다아시만큼의 능력과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나조차도 오만에 빠질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아시의 오만이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 그 오만으로 인해 다아시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하는 첫 청혼에서 대차게 차였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이 그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 그의 오만 떄문에 이런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든 뒤로는 다아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이런 상황에서 다아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그 전환점의 이유가 바로 감사의 마음을 느꼈을 때이다. 사실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감사가 사랑으로 이어진다면 감사를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느껴야 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계속 읽어보면서 생각해보니 아마 다아시 같은 매력적인 남자에게 감사를 느끼고 그 감정이 내재되어있는 사랑의 감정을 깨우지 않았나 싶다. 결국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감사를 느껴 사랑을 한 느낌...? 내 결론이 틀릴 수 있지만, (사실 틀리길 바란다. 이 논리라면 노력해도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저 가설이 맞는 것 같다.
위처럼 공감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공감되는 부분도 정말 많았다.
감사와 존경이 애정의 탄탄한 밑거름이라면 엘리자베스의 감정 변화는 부적절하지도 그릇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말해 이러한 바탕에서 싹튼 호감이 흔히들 말하는 첫 눈에 반했다거나 두 마디도 나누기 전에 사랑에 빠졌다거나 하는 것과 비교해서 부당하거나 부자연스러운 감정이라면, 어떤 말로도 엘리자베스를 옹호해줄 수 없을 것이다.
위컴에게 호감을 느꼈을 때 얼마간 후자의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가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으키는데는 흥미가 조금 덜하더라도 전자의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인정하게 됐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가치관이 답답하다는 내용의 꾸짖음을 듣고 있던 시기인 지금 저 문장은 마치 나를 대변해주는 것 처럼 느껴질정도로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똑같았다.
오랜 시간을 가지고 타인을 알아가면서 감사와 존경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내재되어있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에 독자가 동화될 정도로 이 책은 묘사와 흐름이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첫 만남에 호감을 가지고 이 호감을 절재하면서 감사와 존경의 감정을 바탕으로 애정을 키워야한다는 사실은 위의 발췌한 문장에서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결국 첫 만남에 호감을 느끼는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 같음... ㅠㅠ
3. 결어
결론이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브리저튼의 팬이었던 나에게는 정말 취향에 맞았던 느낌...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쓴 시간이 문장을 눈으로 읽은 시간보다 많은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런 책이 술술 읽힌다는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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