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AGAPE1225 2025. 4. 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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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등학교 때 역사 탐방 프로그램에 매주 참여한 기억이 있다. 엄마가 나가라고 해서 억지로 나갔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나중에는 기대까지 하면서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토요일마다 작은 셔틀버스를 타고 초등학생 10명정도 되는 인원이 박물관이나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에 방문하면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시험공부하러 가는 기분이 아니라 그냥 재밌는 이야기 듣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편안했다.

 

 물론 지금 기억나는건 별로 없다. 하지만 역사 탐방의 마지막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마지막날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했다. 내 집은 거기서 버스로 약 10분거리였다. 9시까지 가야했지만 그날은 다행이도 늦게 일어날 수 있었다.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실에서 할머니가 주신 모시이불 위에서 일어난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더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어머님이 바쁘셔서 나와 유치원생인 동생을 돌봐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일주일동안 우리집에서 주무시면서 아침과 저녁을 챙겨주시고 학원도 보내주셨다. 그분은 토요일 아침이 되면 우리의 아침을 차려주시고 댁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날의 반찬은 아직도 기억난다. 10년도 지난 날의 반찬까지 기억나는거 보니 역사 탐방 프로그램의 마지막날이 그시절 나에게는 상당히 큰 이벤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의 모든 순간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기억해보려고 정말 노력했지만 졸면서 봤던 영화처럼 뜨문 뜨문 몇 장면만 기억이 난다. 그래도 역사 탐방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간은 똑똑하게 기억이 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있는 모든 역사의 순간들을 봤고 마지막 선생님의 설명이 끝났을 때 나는 일본인에 대한 혐오의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고문방법이 정말 세세하게 표현되어있어서 못보는 친구들까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아마 우리의 그런 감정들을 걱정하셨던 것 같다.

 

"역사는 결국 사실을 기록한겁니다. 그걸 객관적인 시선에서 공부해야지 감정에 묻히면 결국 여러분들은 사실을 보고도 오판할 수 있어요."

 

 '악의'는 이런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날정도로 기록을 읽는 독자에 대한 감정을 정멸 잘 이용했다. 몰입하여 읽을수록 끊임없이 뒤집어지는 상황에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를 원한한 것이 아닐까 싶다.

2. 본문 (매우 매우 매우 매우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그 나쁜 이미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리고 한 가지가 번쩍 떠올랐던 것 입니다. 그건 당신이 맨 처음에 써준 사건 당일의 기록입니다.

 

 이 책은 두 기록자가 적은 기록으로 진행된다. 사실적인 표현과 세세한 묘사들을 보면서 여러 인물들에 대한 분위기가 그려진다. 가끔은 분위기 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한 성격까지 그려지기도 한다.

 

 왠지 기록이라는 것은 항상 '사실'일 것만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기록한 글들을 보면 의심도 없이 정보의 검증도 없이 그대로 믿게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술에 대한 설명이 아닌 역사와 일기같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기록한 것 같은 글들을 보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역사 책을 읽으면 비판적 사고 없이 그대로 외우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습성을 정확히 알고 자신이 그려낸 인물들에대해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질지를 정확하게 알고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작품은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기록물을 보며 끊임없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가질 감정과 생각을 예상해 마지막에 날카로운 반전을 줌으로서 독자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당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히다카 씨에 대한 깊디깊은 악의가 잠재되어 있었고, 그것이 이번 사건을 일으키게 한 동기가 아니었을까요?

 

  노노구치가 왜 히다카에게 깊은 악의를 품었는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노노구치의 깊은 내면을 그대로 설명하는 글은 없었지만 글을 읽어오면서 예상되는 부분은 몇가지 나온다. "아마 노노구치는 히다카에 대한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부터 그에게 악의를 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은 부를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가끔은 부를 통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도 종종 만난적이 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배금주의자라며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현대사회에서 부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부를 어떤 요소로 평가할지는 결국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가끔 부를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로 생각하는 사람 중에서 자신보다 경제적인 조건은 모자라지만 다른 방면에서 뛰어난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악의적인 감정을 품는 사람을 볼 때가있다. (실제로 사회에서 많이 만났다.) 자신보다 가난하지만 자신보다 용감한, 자신보다 가난하지만 자신보다 정의로운 사람을 보면 자신이 그들보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낮은 자존감에 영향을 주고 그들의 깊은 내면에서 악의가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노구치는 유복한 집안의 환경에서 자랐다. 그리고 자신이 이사온 동네에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그들을 혐오하였다. 그런 동네사람 중 하나인 학생에게 굴복하고, 그런 동네사람 중 하나인 학생에게 도움을 받는 스스로가 싫지 않았을까 싶다. 노노구치는 모든 가치가 부에 있기에 자신보다 낮은 가치의 사람들에게 굴복하고 도움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악의를 품게 된 것 같다. 결국 사람은 깊은 내면이 힘들다면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어떤 이유라도 만드려한다.

 

 노노구치는 혐오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작가로서 더욱 성공하고 뛰어난 역량과 함께 문학분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존감은 더욱 낮아지고 결국 낮아지는 자존감을 알면서도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악의는 더욱 커져가지 않았을까 싶다.

 

 아쉽게도 이 모든 것은 나의 추측이다. 노노구치의 진정한 속마음은 책에 적혀있지 않다. 아마 히가시고 게이고가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긴것 같다.

3. 결어

 히가시노 게이고는 항상 그 작품의 제목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이 작품도 마지막의 부분에서 제목의 진정한 뜻을 깨달았다. 아마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록에 동화되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게이고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독자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기록물을 읽으며 비판적인 사고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믿고 또 내 감정까지 그로인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아직도 역사 선생님이 해주신 말을 전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편식하는 독서는 건강하지 않다고 한다. 다행이 이 다음책은 추리소설이 아닌 대표적인 고전인 데미안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융의 분석심리학에 관한 자료까지 찾아보고 있는 상황이다. 할일이 너무 많아 책을 다 읽었음에도 독서록을 못 적고 있지만 다행이 강렬한 책의 내용덕에 아직 줄거리와 느낀점을 잊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적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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